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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재

색인 궁재

궁재(宮宰, 라틴어:maior domus- "집안의 관리자"라는 뜻, 영어:Mayor of the Palace)는 중세 초기의 관직의 이름으로 특히 7세기에서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재상(宰相)을 지칭.

22 처지: 라틴어, 메로베우스 왕조, 부르고뉴, 네우스트리아, 다고베르투스 1세, 중세, 카롤루스 마르텔루스, 카롤루스 왕조, 카를로마누스 (궁재), 상파뉴의 드로고, 영어, 킬데리쿠스 3세, 피피누스 1세, 피피누스 2세, 피피누스 3세 브레비스, 프랑크 왕국, 프랑크인의 왕, 아우스트라시아, 테오도알두스, 687년, 747년, 751년.

라틴어

어(Lingua Latīna)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있는 고대 로마와 그 주변 지역 라티움(Latium)에 정착하여 살던 라티움 사람들이 쓰던 언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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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베우스 왕조

메로빙거 왕조 메로베우스 왕조(Merovingian dynasty)는 5세기 중반부터 8세기 중반까지 갈리아의 영토를 이어받아 대부분의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과 스위스 일부분을 로마인들의 점령 직후 5세기부터 8세기까지 통치한 프랑크족을 다스리던 왕조이며 왕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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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부르고뉴()는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레지옹으로 중심 도시는 디종이며 면적은 31,582km2, 인구는 1,631,000명(2008년 기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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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우스트리아

우스트리아와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Neustria) 또는 네우스트라시아는 아키텐에서 영국 해협에 이르는 지역을 부르는 중세의 지명으로 대체로 오늘날 프랑스 북부지역을 말. 중심도시는 파리와 수아송이며 6세기에서 8세기경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시대에 형성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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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베르투스 1세

베르트 1세(Dagobert I, 603년 ~ 639년)는 메로빙거 왕조 출신의 프랑크 왕국의 군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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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서튼후에서 발굴된 앵글로색슨 지도자의 투구(서튼후 투구) 레플리카. 중세(中世, Middle Ages)는 유럽 역사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하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4세기-6세기)이 있었던 5세기부터 르네상스(14세기-16세기)와 더불어 근세(1500년-1800년)가 시작되기까지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시기이나 이 개념은 동양사에는 적용하기 어렵고 유럽 이외 지역에 '중세'가 있었는지도 학자에 따라 의견이 상충하지만 유럽 이외 지역에 '중세'가 없었다는 지극히 유럽 중심주의적인 의견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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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마르텔루스

스 마르텔루스(680년 8월 23일 – 741년 10월 22일)은 카롤링거 왕조 출신 프랑크 왕국의 군주이자 정치, 군사 지도자로, 718년 이후 프랑크 왕국의 동쪽 지방인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로 사실상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부르군트 3개로 나뉜 프랑크 왕국 전체를 지배했으며 프랑크 공작이자 프린스의 호칭을 획득하였다. 그의 별칭 마리텔은 "망치"라는 뜻이다. 사라센의 침략을 격퇴하여 신망을 얻었으며, 로마 교회는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는 데 공이 컸던 카를루스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의 왕위를 승인하게 된다. 714년 아버지 피핀 2세가 죽은 뒤, 궁재직 계승권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뒤 717년 아우스트라시아 분국의 궁재직을 차지하였다. 프랑크 왕국의 궁재직을 석권한 뒤 갈리아의 패권을 장악하였으며, 외부 원정으로는 바이에른과 알레마니아를 공략하여 프랑크 왕국의 영향권 하에 두었고, 아키텐을 속국화하였으며, 프리지아로까지 진출했다. 작센 족과의 전투에서는 패배하였지만 732년 투르-푸아티에의 전투에서 사라센 제국의 이슬람 군대를 크게 격퇴하였다. 737년부터는 공석이던 프랑크 왕국의 국왕을 대신하여 왕국을 통치하기도 했다. 자신을 도운 이복 형제 힐데브란트를 비롯한 부하 관료들에게 공작, 백작, 기사 등의 칭호를 부여해주었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봉건 제도의 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그의 사후 프랑크 왕국의 궁재직은 카를로만 1세와 피핀 3세가 나누어 차지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성 보니파시오의 보호자이자 후견자였으며, 교황청은 한때 그에게 왕관을 제의하였지만 거절하였다. 732년 이슬람 교도와 치른 투르 전투 때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교회의 땅을 징발하여 나누어줌으로서 교회와 서로 틈이 생겼다. 그는 군사물자 및 식량 조달과 가신들에게 봉토 제공 등 목적으로 교회, 수도원, 수녀원의 토지와 재산을 수시로 압수하여 군비와 봉토로 조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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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왕조

링거 왕조의 가계도 카롤루스 왕조(Carolingian dynasty)는 프랑크족 카롤루스 일족이 세운 왕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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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마누스 (궁재)

를로만 1세(Carloman I, Karlmann I) 또는 아우스트라시아의 카를로만(Carloman I of Austrasia, Karlmann I of Austrasia, 706년/707년에서 713년 사이 ~ 754년)은 카롤링거 왕조 출신 프랑크 왕국의 궁재, 관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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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뉴의 드로고

상파뉴의 드로고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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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영어(英語)는 영국의 잉글랜드에서 기원한 서게르만어군 언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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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데리쿠스 3세

리쿠스 3세(Childeric III, ? ~ 754년)는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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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누스 1세

1세(Pepin I, 580년 아우스트라시아 ~ 640년 2월 27일)은 프랑크 왕국의 귀족이자 관료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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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누스 2세

2세(Pepin II, 630년 ~ 714년 12월 16일)는 프랑크 왕국의 귀족이자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의 궁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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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누스 3세 브레비스

스 3세 브레비스(Pippinus III Brevis 714년 – 768년 9월 24일)는 카롤링거 왕조 출신 프랑크 왕국의 군주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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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

랑크 왕국()은 5세기 말 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아우르는 지역에 세운 왕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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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인의 왕

여기서는 프랑크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군주의 목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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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트라시아

우스트리아와 아우스트라시아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동쪽의 땅"이란 뜻)는 메로빙거 프랑크 왕국의 북동쪽 지역을 일컫는 옛 지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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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알두스

오도알트(Theodoald) 또는 테우도알트(Theudoald, ? - 741년)는 프랑크 왕국의 정치인이며 피핀 2세와 그의 적처 플렉트루데의 손자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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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년

설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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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년

설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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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년

설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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