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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당

색인 대의당

의당(大義黨)은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5년에 경성부에서 결성된 단체이.

26 처지: 만주국, 박흥식 (1903년), 박춘금, 경성부, 고원훈, 김동진 (1902년), 김동환 (1901년), 김사연 (1896년), 김신석, 이광수, 이승우 (법조인), 이성근 (1887년), 이원보, 일본 제국, 일본군, 일제 강점기, 정연기 (1891년), 조문기, 조병상, 주요한, 중국, 태평양 전쟁, 손영목 (1888년), 신태악, 1945년, 7월 24일.

만주국

만주국의 영역 만주국()은 일본 제국이 만주 사변 직후부터 만주 지역에 세운 괴뢰국가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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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1903년)

박흥식(朴興植, 1903년 9월 26일 ~ 1994년 5월 10일)은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기업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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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금

일본 중의원 의원 당선되었을때 당시 박춘금. (중앙에 있는 사람이 박춘금이다.) 박춘금(朴春琴, 1891년 4월 17일 ~ 1973년 3월 31일)은 일제 강점기의 직업적 친일 인물이자 정치 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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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

경성부(京城府) 또는 게이조 부()는 일제 강점기 때에 존재했던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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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훈

원훈(高元勳, 일본식 이름: 高元勳, 1881년 3월 ~ 1950년)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기업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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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1902년)

동진(金東進, 일본식 이름: 金本東進, 1902년 ~ ?)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언론인이며 친일 공산주의 운동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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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1901년)

동환(金東煥, 일본식 이름: 白山靑樹 시로야마 세이주 혹은 시라야마 아오키, 1901년 9월 27일 ~ 1958년)은 대한민국의 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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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연 (1896년)

사연(金思演, 일본식 이름: 金思演, 1896년 1월 2일 ~ 1950년 9월 20일)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언론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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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석

신석(金信錫, 1896년 9월 26일 ~ 1948년 9월 12일)은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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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이광수(李光洙),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 ~ 1950년 10월 25일)는 조선,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소설가, 언론인, 시인, 문학평론가, 작가, 반민족행위자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목조의 장남 안원대군의 후손이다.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한민족 독립 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 그리고 신한청년당의 독립운동지 신한청년(新韓靑年)에도 주필로서 참여하였다. 그는 아시아 근대 문학과 지성의 태동기에서 대한의 재생과 광복을 꿈꾸고 기획하였으며, 여성 해방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언론인 활동으로 일제 강점기에서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영미권의 작품을 한글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일본 유학 중에 소설과 시, 논설 등을 발표하였고,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망명, 1919년 도쿄(東京)의 조선인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주도했으며,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후 3·1 운동 전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그후 독립운동지 신한청년 등에서 주필을 역임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의 정당성과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데 노력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발간하는 기관지인 《독립신문사》 사장을 맡아 활동했다. 하지만 허영숙이 상하이로 찾아와 귀국을 종용하자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접고 1921년 3월 귀국하여 허영숙과 결혼하였다. 종학원에서 철학, 윤리, 심리, 종교 등을 강의했고 경성학교와 경신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잡지《개벽》에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출판법위반으로 입건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1922년 5월 개벽지(誌)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우리민족이 쇠퇴한 것은 도덕적 타락 때문이라고 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쓰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 회장이 되었으며 같은 달 20일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협회 주체 전선(戰線) 병사 위문대·위문문 보내기 행사를 주도하였다. 1940년 2월 15일자 『매일신보』에 「국민문학의 의의」를 게재하고 황민화운동을 지지하였으며, 2월 20일자 『매일신보』의 「창씨(創氏)와 나」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3월부터 7월까지 『녹기(綠旗)』에 「진정 마음이 만나서야말로」를 연재하였으며, 9월 직접 작사한 노래 「지원병 장행가(壯行歌)」가 경성중앙방송국 제2방송에서 방송되었다. 12월에는 『국민총력』에 지원병훈련소 참관기인 「지원병훈련소의 하루」를 발표하였고, 황도학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41년 일본어 산문집 『동포에 부침』이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간행되었다. 8월 임전대책협의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41년 9월 3∼5일자 『매일신보』에 「반도민중의 애국운동」을 게재해 일본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지지하였다. 12월 조선임전보국단 전시생활부장으로, 영미타도대강연회에서 ‘사상 함께 영미를 격멸하라’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42년 5월 조선임전보국단이 주최한 징병제도 연설회에서는 ‘획기적 대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으며, 『신시대』 1942년 4월호 「징병과 여성」을 게재해 징병제 실시를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6월 조선문인협회 주최의 ‘일본 군인이 되는 마음가짐’을 듣는 좌담회, 11월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가하였다. 1943년 4월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로 선출되었고, 11월 임시특별지원병제도 경성익찬회 종로위원회 실행위원과 연사로 활동하였다. 같은 달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 내 한국인 유학생들의 입대를 권유하는 ‘선배 격려대’에 참여하였다. 1944년 6월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결전태세즉응(決戰態勢卽應) 재선(在鮮) 문학자 총궐기대회 의장을 맡았다. 8월 적국항복 문인대강연회에서 ‘전쟁과 문학’이란 제목으로 강연을하였으며, 11월 제3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석하였다. 1945년 2월 대화동맹 준비위원 겸 이사, 6월 조선언론보국회 명예회원과 대의당(大義黨) 위원이 되었다. 해방 이후로 백범일지의 교정, 윤문과 안창호의 일대기 집필을 직접 맡아 주관하기도 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기소가 제기됐으나 석방되었고, 1950년 6월 한국 전쟁때는 서울에 있다가 북한 인민군에게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滿浦)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순한글체 소설을 쓰는 등 소설 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기도 하였다. 소설가로는 구한 말과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 '만인의 연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청소년 남녀 문인들의 우상이었고, 최남선,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었다. 자는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고주(孤舟)·외배·올보리·장백산인(長白山人)이며, 필명으로 춘원생, 경서학인(京西學人), 노아자닷뫼당백, Y생, 장백, 장백산인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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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법조인)

이승우(李升雨, 일본식 이름: 梧村升雨, 1889년 8월 ~ 1955년 8월 27일)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일제 강점기의 변호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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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1887년)

이성근(李聖根, 일본식 이름: 金川聖, 1887년 11월 ~ ?)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출신 관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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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보

이원보(李源甫, 일본식 이름: 李家源甫, 1889년 2월 27일 ~ 1968년 7월 13일)는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로, 호는 취석(翠石), 본적은 경기도 경성부 이화동이며 함경남도 덕원군 출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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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일본 제국(日本 帝國)은 1868년 1월 3일부터 1947년 5월 3일 사이의 일본의 입헌 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특수한 정치 체제(국가 체제), 혹은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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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일본군(日本軍,)은 일본 제국의 군대를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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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제강점기(1910년 8월 29일 ~ 1945년 8월 15일)는 한국의 역사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시대별로 나누었을 때 주요 시대 중 하나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 아래 놓였던 시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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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기 (1891년)

정연기(鄭然基, 일본식 이름: 草本然基, 1891년 5월 2일 ~ ?)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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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기

유만수 조문기(趙文紀, 1927년 5월 19일 ~ 2008년 2월 5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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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상

조병상(曺秉相, 일본식 이름: 夏山茂, 1891년 2월 16일 ~ 1978년 12월 30일)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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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

주요한(朱曜翰, 일본식 이름: 松村紘一(마쓰무라 고이치), 1900년 12월 5일 ~ 1979년 11월 17일)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사회운동가·시인·언론인, 개신교 목사이며 극작가이고,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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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은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태평양 서부 연안의 도서 지방을 포괄하는 지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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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평양 전쟁, 또는 때때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역 중 하나로 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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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목 (1888년)

손영목(孫永穆, 일본식 이름: 孫永穆, 1888년 11월 21일 ~ 1950년 5월 7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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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악

신태악(辛泰嶽, 일본식 이름: 三川泰嶽 또는 三川淸, 1902년 3월 4일 ~ 1980년)은 대한변호사협회 제9대 회장을 지낸 한국의 법조인, 정치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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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945년은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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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7월 2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05번째(윤년일 경우 206번째) 날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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