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식와 최남선의 유사점
민원식와 최남선는 공통적으로 31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니온백과에서): 도쿄, 독립운동, 동아일보, 매일신보, 민족문제연구소, 민족주의, 경성, 경성부, 경성일보,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대한제국, 이광수, 일본, 일본어, 일제 강점기, 조선, 조선총독부, 중국어, 중일 전쟁, 친일인명사전, 유길준, 태평양 전쟁, 한국어, 한일 병합 조약, 안재홍, 안창호, 1907년, 1908년, 1918년, 1919년, ..., 3·1 운동. 색인을 확장하십시오 (1 더) »
도쿄
신주쿠의 마천루들 도쿄()는 일본의 혼슈 동부에 있는, 메이지 시대 이후 사실상 일본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
독립운동
독립운동(獨立運動,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또는 해방운동(解放運動)은 어떤 국가 또는 세력의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는 지역에서 자치권 등의 권한을 얻거나, 스스로의 국가 또는 세력을 세우기 위해 벌이는 모든 행위를 말. 그러므로 국가의 독립은 기존 국가에 속한 일부 지역이나 타국의 지배하에 있던 영역이, 그 지배를 벗어나 새로운 국가로 성립하는 것을 의미.
동아일보
《동아일보》(東亞日報, Dong-A Ilbo)는 신문 발행 업체인 동아일보사가 서울에서 발행하는 대한민국의 일간 신문이.
매일신보
1910년 8월 30일자 매일신보 창간호. 1945년 8월 15일자 매일신보 《매일신보》(每日申報, 每日新報)는 일제 강점기 동안 발행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이.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民族問題硏究所)는 재야운동가 임종국의 유지를 잇는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단체로서, 1991년 2월 27일 '반민족문제연구소'로 시작하여 1995년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한 민간 단체이.
민족주의
민족주의(民族主義) 또는 혈통적 국민주의()는 민족(ethnic group)에 대해 가지는 소속감이나 애착심, 그리고 그것을 강조하려는 생각이나 정치적 운동을 말. 대표적인 예로 1992년 독립을 선포한 압하스인들의 자신들의 민족만의 나라를 건설하고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압하지야 공화국이나 근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일어난 통일 국가 수립 운동이 있.
경성
경성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
경성부
경성부(京城府) 또는 게이조 부()는 일제 강점기 때에 존재했던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해당.
경성일보
《경성일보》()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동안 발행된 신문이.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반민규명위 보고서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大韓民國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약칭 반민규명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 3월 22일 공포되면서 이 법률의 시행령에 따라 2005년 5월 31일 대통령 소속으로 발족한 기구이.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민원식 ·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최남선 ·
대한제국
제국()은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통치하였던 전제군주제 국가이.
이광수
이광수(李光洙),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 ~ 1950년 10월 25일)는 조선,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소설가, 언론인, 시인, 문학평론가, 작가, 반민족행위자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목조의 장남 안원대군의 후손이다.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한민족 독립 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 그리고 신한청년당의 독립운동지 신한청년(新韓靑年)에도 주필로서 참여하였다. 그는 아시아 근대 문학과 지성의 태동기에서 대한의 재생과 광복을 꿈꾸고 기획하였으며, 여성 해방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언론인 활동으로 일제 강점기에서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영미권의 작품을 한글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일본 유학 중에 소설과 시, 논설 등을 발표하였고,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망명, 1919년 도쿄(東京)의 조선인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주도했으며,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후 3·1 운동 전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그후 독립운동지 신한청년 등에서 주필을 역임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의 정당성과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데 노력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발간하는 기관지인 《독립신문사》 사장을 맡아 활동했다. 하지만 허영숙이 상하이로 찾아와 귀국을 종용하자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접고 1921년 3월 귀국하여 허영숙과 결혼하였다. 종학원에서 철학, 윤리, 심리, 종교 등을 강의했고 경성학교와 경신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잡지《개벽》에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출판법위반으로 입건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1922년 5월 개벽지(誌)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우리민족이 쇠퇴한 것은 도덕적 타락 때문이라고 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쓰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 회장이 되었으며 같은 달 20일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협회 주체 전선(戰線) 병사 위문대·위문문 보내기 행사를 주도하였다. 1940년 2월 15일자 『매일신보』에 「국민문학의 의의」를 게재하고 황민화운동을 지지하였으며, 2월 20일자 『매일신보』의 「창씨(創氏)와 나」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3월부터 7월까지 『녹기(綠旗)』에 「진정 마음이 만나서야말로」를 연재하였으며, 9월 직접 작사한 노래 「지원병 장행가(壯行歌)」가 경성중앙방송국 제2방송에서 방송되었다. 12월에는 『국민총력』에 지원병훈련소 참관기인 「지원병훈련소의 하루」를 발표하였고, 황도학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41년 일본어 산문집 『동포에 부침』이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간행되었다. 8월 임전대책협의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41년 9월 3∼5일자 『매일신보』에 「반도민중의 애국운동」을 게재해 일본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지지하였다. 12월 조선임전보국단 전시생활부장으로, 영미타도대강연회에서 ‘사상 함께 영미를 격멸하라’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42년 5월 조선임전보국단이 주최한 징병제도 연설회에서는 ‘획기적 대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으며, 『신시대』 1942년 4월호 「징병과 여성」을 게재해 징병제 실시를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6월 조선문인협회 주최의 ‘일본 군인이 되는 마음가짐’을 듣는 좌담회, 11월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가하였다. 1943년 4월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로 선출되었고, 11월 임시특별지원병제도 경성익찬회 종로위원회 실행위원과 연사로 활동하였다. 같은 달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 내 한국인 유학생들의 입대를 권유하는 ‘선배 격려대’에 참여하였다. 1944년 6월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결전태세즉응(決戰態勢卽應) 재선(在鮮) 문학자 총궐기대회 의장을 맡았다. 8월 적국항복 문인대강연회에서 ‘전쟁과 문학’이란 제목으로 강연을하였으며, 11월 제3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석하였다. 1945년 2월 대화동맹 준비위원 겸 이사, 6월 조선언론보국회 명예회원과 대의당(大義黨) 위원이 되었다. 해방 이후로 백범일지의 교정, 윤문과 안창호의 일대기 집필을 직접 맡아 주관하기도 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기소가 제기됐으나 석방되었고, 1950년 6월 한국 전쟁때는 서울에 있다가 북한 인민군에게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滿浦)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순한글체 소설을 쓰는 등 소설 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기도 하였다. 소설가로는 구한 말과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 '만인의 연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청소년 남녀 문인들의 우상이었고, 최남선,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었다. 자는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고주(孤舟)·외배·올보리·장백산인(長白山人)이며, 필명으로 춘원생, 경서학인(京西學人), 노아자닷뫼당백, Y생, 장백, 장백산인 등을 썼다.
일본
일본국(닛폰코쿠), 약칭 일본(日本,, 닛폰)은 동아시아에 있는 국. 국토는 태평양에 있는 일본 열도의 네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를 중심으로 주변에 산재한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 총 면적은 37만 7835 km2인데 이는 노르웨이(스발바르 제도와 얀마옌을 포함한 경우)보다 작으며 독일보.
일본어
일본어(「にっぽんご」를 표제어로 세우고 있는 국어사전은 일본국어대사전 등 소수에 그친다.)는 주로 일본에서 사용되는 언어이.
일제 강점기
일제강점기(1910년 8월 29일 ~ 1945년 8월 15일)는 한국의 역사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시대별로 나누었을 때 주요 시대 중 하나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 아래 놓였던 시기이.
조선
조선(朝鮮,, 1392년~1897년(혹은 1910년))은 이성계가 세운 나라이.
조선총독부
조선총독부의 휘장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거버먼트 제네럴 오브 코리아)는 일본 제국이 1910년 10월 1일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한반도에 대한 통치를 위해 운영하던 직속기관이었.
민원식와 조선총독부 · 조선총독부와 최남선 ·
중국어
중국어()는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언어로, 16가지 정도의 언어변이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어(ㄏㄢˋㄩˇ), 화어(ㄏㄨㄚˊㄩˇ), 중문(ㄓㄨㄥㄨㄣˊ)이라고도 한다. 세계 사용자가 가장 많은(약 13억 명) 언어로, 전 세계 인구의 약 1/5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이다.
중일 전쟁
중일 전쟁(中日戰爭)은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 중화민국과 일본제국 사이의 전쟁이.
민원식와 중일 전쟁 · 중일 전쟁와 최남선 ·
친일인명사전
일인명사전(親日人名辭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에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한국인(친일파)의 목록을 정리해 2009년 11월 8일에 발간한 인명 사전이.
유길준
유길준(兪吉濬, 1856년 양력 11월 21일(음력 10월 24일) ~ 1914년 양력 9월 30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외교관, 작가이며 대한제국의 정치가·개화 사상가·계몽운동가이.
태평양 전쟁
평양 전쟁, 또는 때때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역 중 하나로 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이.
한국어
국어의 세계 분포를 나타낸 그림. 한국어(韓國語) 또는 조선말(朝鮮말)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용어로,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어라고 부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말,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에서는 조선어(朝鮮語)라고 부르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고려말(高麗말)이라고 부른.
한일 병합 조약
일 병합 조약() 또는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일방적인 위력에 의해 이루어진 합병조약(合倂條約)이.
민원식와 한일 병합 조약 · 최남선와 한일 병합 조약 ·
안재홍
안재홍(安在鴻, 1891년 12월 30일 ~ 1965년 3월 1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정치가이며 언론인, 역사가, 언어학자이.
안창호
안창호(安昌浩, 1878년 11월 9일 ~ 1938년 3월 10일)는 대한제국의 교육개혁운동가 겸 애국계몽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이.
1907년
1907년은 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1907년와 민원식 · 1907년와 최남선 ·
1908년
1908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
1908년와 민원식 · 1908년와 최남선 ·
1918년
1918년은 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1918년와 민원식 · 1918년와 최남선 ·
1919년
1919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1919년와 민원식 · 1919년와 최남선 ·
3·1 운동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
위의 목록은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 민원식와 최남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민원식와 최남선의 유사점은 무엇입니까
민원식와 최남선의 비교.
민원식에는 374 개의 관계가 있고 최남선에는 117 개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공통점 31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Jaccard 지수는 6.31%입니다 = 31 / (374 + 117).
참고 문헌
이 기사에서는 민원식와 최남선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정보가 추출 된 각 기사에 액세스하려면 다음 사이트를 방문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