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9 처지: 백제의 멸망, 계백, 금산 전투, 김완규, 우척현 전투, 이몽학의 난, 음력 360일, 음력 6월 9일, 음력 7월 10일, 음력 7월 8일, 음력 8월 9일, 조선의 일본 국서 거부, 호슌인, 성녕대군, 소 사다쿠니, 황비홍, 황산벌, 황산벌 전투, 7월 9일.
백제의 멸망
백제의 멸망(百濟 ― 滅亡)은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한 전쟁을 가리.
계백
백(階伯, 미상~ 660년 8월 20일(음력 7월 9일), 일명은 堦伯(계백), 階升(계승))은 백제 말기의 장군이.
보다 음력 7월 9일와 계백
금산 전투
산 전투(錦山戰鬪)는 임진왜란 당시 음력 7월 9일~음력 7월 10일, 음력 8월 18일에 걸쳐 금산에서 의병과 관군들이 싸운 전투로 의병들의 대표적인 혈전으로 꼽힌.
김완규
완규(金完圭, 1878년 8월 7일(음력 7월 9일) ~ 1948년 양력 5월 25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
우척현 전투
우척현 전투(牛脊峴戰鬪)는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 제6진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정암진 전투, 웅치 전투, 이치 전투에 이어 4번째로 거창을 통해 전라도를 침략하려다가 김면(金沔)과 정인홍(鄭仁弘) 등의 의병들과 싸워 크게 패한 전투이.
이몽학의 난
이몽학의 난(李夢鶴-亂)은 1596년 임진왜란 뒤 정유재란 전 이몽학이 불만에 찬 농민들을 선동하여 충청도 일대에서 일으킨 반란이.
음력 360일
이 문서는 음력 360일 각각의 문서들을 모아 놓은 문서이.
음력 6월 9일
음력 6월 9일은 음력 6월의 9번째 날이.
음력 7월 10일
음력 7월 10일은 음력 7월의 10번째 날이.
음력 7월 8일
음력 7월 8일은 음력 7월의 8번째 날이.
음력 8월 9일
음력 8월 9일은 음력 8월의 9번째 날이.
조선의 일본 국서 거부
조선의 일본 국서 거부는 조선 말기에 조선 조정을 관리하는 흥선대원군이 유교 사상으로의 쇄국 정책을 펼치면서 일본에서 보낸 국서(곧 서계)를 거부한 사건으로, 서계 사건 또는 서계 거부 사건이.
호슌인
마쓰 마쓰(まつ, 1547년 7월 25일(덴분 16년 음력 7월 9일) ~ 1617년 8월 17일(겐나 3년 음력 7월 16일))는 가가 국(이시카와현)의 다이묘 마에다 도시이에의 정실이.
성녕대군
성녕대군 이종(誠寧大君 李褈, 1405년 8월 3일(음력 7월 9일) ~ 1418년 3월 11일(음력 2월 4일))은 조선 태종 임금의 제4적자로 이름은 이종(李褈), 본관은 전주(全州)이.
소 사다쿠니
소 사다쿠니(宗貞国, 오에이 29년(1422년) - 메이오 3년(1494년) 음력 7월 9일(8월 18일))는 일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중기에서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에 걸친 시기의 무장이.
황비홍
산에 있는 황비홍기념관의 입구 황비홍(광둥어 발음: Wòhng Fēihùhng, 1847년 음력 7월 9일 ~ 1924년 3월 25일)은 청나라와 중화민국의 무술가, 한의사, 항일 독립운동가이.
황산벌
황산벌(黃山벌)은 오늘날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및 신암리 일대에 위치해 있던 벌판이.
황산벌 전투
황산벌 전투(黃山벌 戰鬪)는 660년 8월 20일 (음력 7월 9일) 황산벌(오늘날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및 신암리 일대)에서 백제군과 신라군 사이에 일어났던 전투이.
7월 9일
7월 9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90번째(윤년일 경우 191번째) 날에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