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벌 마크
유니온백과
통신
다운로드하기 Google Play
새로운! 안드로이드 ™에 유니온백과를 다운로드 할 수 있습니다
비어 있는
브라우저보다 빠른!
 

조선문인협회

색인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는 일제 강점기의 문학 단체이.

22 처지: 모윤숙, 백철, 박영희 (1901년), 부여신궁, 김동환 (1901년), 김문집, 김형원 (시인), 김억, 김사영 (소설가), 임학수 (시인), 이광수, 이헌구, 정인섭, 정훈 (군인), 조용만, 조우식, 조선문인보국회, 친일 문학, 유진오, 유치진, 함대훈, 1939년.

모윤숙

모윤숙(毛允淑, 1910년 3월 5일 ~ 1990년 6월 7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수필가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모윤숙 · 더보기 »

백철

백철(白鐵, 일본식 이름: 白矢世哲, 1908년 3월 18일 ~ 1985년 10월 13일)은 한국의 문학평론가로, 본명은 백세철(白世哲)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백철 · 더보기 »

박영희 (1901년)

박영희(朴英熙, 일본식 이름: 요시무라 고도, 1901년 12월 20일 ~ 1950년)는 일제 강점기 조선의 친일 사회주의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언론인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박영희 (1901년) · 더보기 »

부여신궁

부여신궁(扶餘神宮)은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건축 공사 중이었던 신토의 신사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부여신궁 · 더보기 »

김동환 (1901년)

동환(金東煥, 일본식 이름: 白山靑樹 시로야마 세이주 혹은 시라야마 아오키, 1901년 9월 27일 ~ 1958년)은 대한민국의 시인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김동환 (1901년) · 더보기 »

김문집

문집(金文輯, 일본식 이름: 大江龍之介(오에 류노스케), 1907년 7월 7일 ~ ?)은 한국의 문학평론가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김문집 · 더보기 »

김형원 (시인)

형원(金炯元, 1900년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시인 겸 언론인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김형원 (시인) · 더보기 »

김억

억(金億, 일본식 이름: 岸曙生, 1896년 11월 30일 ~ ?)은 한국의 시인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김억 · 더보기 »

김사영 (소설가)

사영(金士永, 일본식 이름: 淸川士郞 기요카와 시로, 1915년 2월 4일 ~ ?)은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로, 경상북도 상주군 출신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김사영 (소설가) · 더보기 »

임학수 (시인)

임학수(林學洙, 1911년 7월 3일 ~ 1982년 6월 21일)는 일제 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으로, 호는 악이(岳伊)이며 본적은 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임학수 (시인) · 더보기 »

이광수

이광수(李光洙),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 ~ 1950년 10월 25일)는 조선,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소설가, 언론인, 시인, 문학평론가, 작가, 반민족행위자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목조의 장남 안원대군의 후손이다.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한민족 독립 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 그리고 신한청년당의 독립운동지 신한청년(新韓靑年)에도 주필로서 참여하였다. 그는 아시아 근대 문학과 지성의 태동기에서 대한의 재생과 광복을 꿈꾸고 기획하였으며, 여성 해방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언론인 활동으로 일제 강점기에서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영미권의 작품을 한글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일본 유학 중에 소설과 시, 논설 등을 발표하였고,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망명, 1919년 도쿄(東京)의 조선인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주도했으며,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후 3·1 운동 전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그후 독립운동지 신한청년 등에서 주필을 역임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의 정당성과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데 노력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발간하는 기관지인 《독립신문사》 사장을 맡아 활동했다. 하지만 허영숙이 상하이로 찾아와 귀국을 종용하자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접고 1921년 3월 귀국하여 허영숙과 결혼하였다. 종학원에서 철학, 윤리, 심리, 종교 등을 강의했고 경성학교와 경신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잡지《개벽》에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출판법위반으로 입건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1922년 5월 개벽지(誌)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우리민족이 쇠퇴한 것은 도덕적 타락 때문이라고 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쓰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 회장이 되었으며 같은 달 20일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협회 주체 전선(戰線) 병사 위문대·위문문 보내기 행사를 주도하였다. 1940년 2월 15일자 『매일신보』에 「국민문학의 의의」를 게재하고 황민화운동을 지지하였으며, 2월 20일자 『매일신보』의 「창씨(創氏)와 나」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3월부터 7월까지 『녹기(綠旗)』에 「진정 마음이 만나서야말로」를 연재하였으며, 9월 직접 작사한 노래 「지원병 장행가(壯行歌)」가 경성중앙방송국 제2방송에서 방송되었다. 12월에는 『국민총력』에 지원병훈련소 참관기인 「지원병훈련소의 하루」를 발표하였고, 황도학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41년 일본어 산문집 『동포에 부침』이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간행되었다. 8월 임전대책협의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41년 9월 3∼5일자 『매일신보』에 「반도민중의 애국운동」을 게재해 일본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지지하였다. 12월 조선임전보국단 전시생활부장으로, 영미타도대강연회에서 ‘사상 함께 영미를 격멸하라’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42년 5월 조선임전보국단이 주최한 징병제도 연설회에서는 ‘획기적 대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으며, 『신시대』 1942년 4월호 「징병과 여성」을 게재해 징병제 실시를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6월 조선문인협회 주최의 ‘일본 군인이 되는 마음가짐’을 듣는 좌담회, 11월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가하였다. 1943년 4월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로 선출되었고, 11월 임시특별지원병제도 경성익찬회 종로위원회 실행위원과 연사로 활동하였다. 같은 달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 내 한국인 유학생들의 입대를 권유하는 ‘선배 격려대’에 참여하였다. 1944년 6월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결전태세즉응(決戰態勢卽應) 재선(在鮮) 문학자 총궐기대회 의장을 맡았다. 8월 적국항복 문인대강연회에서 ‘전쟁과 문학’이란 제목으로 강연을하였으며, 11월 제3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석하였다. 1945년 2월 대화동맹 준비위원 겸 이사, 6월 조선언론보국회 명예회원과 대의당(大義黨) 위원이 되었다. 해방 이후로 백범일지의 교정, 윤문과 안창호의 일대기 집필을 직접 맡아 주관하기도 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기소가 제기됐으나 석방되었고, 1950년 6월 한국 전쟁때는 서울에 있다가 북한 인민군에게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滿浦)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순한글체 소설을 쓰는 등 소설 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기도 하였다. 소설가로는 구한 말과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 '만인의 연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청소년 남녀 문인들의 우상이었고, 최남선,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었다. 자는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고주(孤舟)·외배·올보리·장백산인(長白山人)이며, 필명으로 춘원생, 경서학인(京西學人), 노아자닷뫼당백, Y생, 장백, 장백산인 등을 썼다.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이광수 · 더보기 »

이헌구

이헌구(李軒求, 일본식 이름: 牧山軒求 나키야마 노키쿠, 1905년 5월 12일 ~ 1983년 1월 4일)는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작가이며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작가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이헌구 · 더보기 »

정인섭

정인섭(鄭寅燮, 일본식 이름: 東原寅燮, 1905년 3월 31일 ~ 1983년 9월 16일)은 한국의 문학평론가, 번역문학가, 영문학자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정인섭 · 더보기 »

정훈 (군인)

정훈(鄭勳, 일본식 이름: 蒲勳(가마 이사오), ? ~ ?)은 일제 강점기의 군인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정훈 (군인) · 더보기 »

조용만

조용만(趙容萬, 1909년 3월 10일 ~ 1995년 2월 6일)은 한국의 영문학자, 기자, 문학.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조용만 · 더보기 »

조우식

조우식(? ~ ?)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 작가, 화가, 문학평론가, 언론인으로, 본적은 경성부 광희정(1946년 5월 26일 당시 주소)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조우식 · 더보기 »

조선문인보국회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는 일제 강점기의 말기의 문학 단체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조선문인보국회 · 더보기 »

친일 문학

일문학(親日文學)은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의 침략 전쟁이나, 황민화 정책의 강행에 의해서 이를 고무하거나 찬양한 문학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친일 문학 · 더보기 »

유진오

유진오(兪鎭午, 1906년 5월 13일 ~ 1987년 8월 30일)는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민국의 소설가, 법학자, 교육자, 정치가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유진오 · 더보기 »

유치진

유치진(柳致眞, 1905년 11월 19일 ~ 1974년 2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연극인, 극작가, 소설가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유치진 · 더보기 »

함대훈

훈(咸大勳, 1907년 8월 21일 ~ 1949년 3월 21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연극인이자 소설가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함대훈 · 더보기 »

1939년

1939년은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새로운!!: 조선문인협회와 1939년 · 더보기 »

나가는들어오는
이봐 요! 우리는 지금 Facebook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