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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도독부

색인 군무도독부

무도독부(軍務都督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 운동 단체이.

14 처지: 만주, 박영, 봉오동 전투,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이동춘, 청산리 전투, 최진동, 삼둔자 전투, 서로군정서, 안무, 홍범도, 1919년, 1920년.

만주

붉은색은 둥베이(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 지방이고, 조금 연한 부분은 내몽골 자치구 동부 지역, 가장 연한 부분은 외만주이다. 만주()는 동북아시아 압록강 북쪽의 광활한 지역을 일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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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

박영(朴英, 1471년 ~ 1540년)은 조선의 무신, 의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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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鳳梧洞戰鬪)는 1920년 6월 6일~6월 7일 만주에 주둔 중이던 홍범도(洪範圖), 최진동(崔振東, 일명 최명록(崔明錄)), 안무 등이 이끄는 대한군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의 독립군 연합부대와 신민단 예하 이흥수, 한경세의 신민단 독립군 1개 중대가 연합, 중국 지린 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 남양수비대 예하 1개 중대와 싸운 전투이다. 병력은 교전 당시 대한북로독군부 소속 한국인 독립군은 천 2백여 명이었고, 일본군은 5백여 명 정도였다. 삼둔자 전투에서의 패전 이후 일본군 제19사단은 병력을 출병하여 간도 내의 독립군단 토벌에 나선다. 1920년 6월 7일 북로 제1군 사령부(간도국민대) 부장 홍범도는 군무 도독부군, 국민회 독립군과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고 봉오동 골짜기 인근에 포위진을 짜고 제3소대 분대장 이화일을 시켜 일본군을 유인해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소나기가 내리쳤고, 일본군 부대는 선봉으로 올라가던 일본군 부대를 독립군으로 오인하여 사격을 가하면서 교전했다. 고지 꼭대기까지 올라간 홍범도 부대는 이를 내려다보고 남은 일본군에게 사격을 가했다. 6월 7일 오후 1시쯤, 일본군이 봉오동 상동(上洞) 남쪽 300m 지점 갈림길까지 들어오자 홍범도는 신호탄을 올렸다. 중앙선데이 제257호 257호 2012.02.12 삼면 고지에 매복한 독립군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된 봉오동 전투는 3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사상자가 늘자 월강추격대대는 도주하기 시작했는데, 강상모(姜尙模)가 2중대를 이끌고 쫓아가 다시 큰 타격을 입혔다. 임시정부 군무부는 봉오동 승첩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전사한 반면 아군은 불과 4명만 전사했다고 발표했다. 상해 임시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 측 피해는 전사자 157, 중상 200, 경상 100명이며 독립군 측 피해는 전사자 4, 중상 2명에 불과했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된 북로독군부군은 청산리로 옮겨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연합하여 청산리 대첩을 전개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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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군정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는 1919년 북간도에서 만든 무장독립운동 단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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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

독립군(大韓獨立軍)은 1919년 홍범도가 사령관이 되어 의병 출신을 중심으로 중국 지린성에서 만든 항일 독립군 부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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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춘

이동춘(李東春, Dong-Chun Lee, 1963년 3월 8일 ~ 1995년 9월 9일)은 대한민국의 전 권투 선수로,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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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전투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 또는 청산리 대첩(靑山里 大捷)은 1920년 10월 김좌진, 나중소(羅仲昭), 서일, 이범석 등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 등 주축으로 활약한 만주 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의 10여 차례에 간도에 출병한 일본 제국 육군과 전투를 벌인 총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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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동

동(崔振東, 1883년 ~ 1945년 11월 2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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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둔자 전투

삼둔자 전투(三屯子戰鬪)는 1920년 6월 4일 새벽 5시부터 6월 6일 자정까지 대한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의 독립군 연합부대와 신민단 예하 이흥수의 신민단 독립군 1개 중대가 연합, 만주 북간도 화룡현(和龍縣) 월신강변 삼둔자(三屯子)에서 니히미 지로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 남양수비대(南陽守備隊) 예하 1개 중대를 격파한 소규모 전투였다. 한국인 독립군이 국내 진공을 목적으로 일본군을 선제 공격한 사건이기도 하다. 봉오동 전투로 이어지며 넓게는 봉오동 전투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6월 4일 새벽에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에서 출발한 독립군 홍범도, 최진동 부대의 1개소대와 신민단 독립군 예하 1개 소대가 당일 새벽 5시 경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의 일본군 헌병 초소를 선제 습격함으로써 발생하였다. 이후 6월 6일 월강추격대대가 이들을 추격하여 불법으로 중국 영토인 삼둔자에 왔으나 독립군이 보이지 않아 보복으로 양민을 살육하였다. 삼둔자 범진령 고개에 숨어있던 독립군 부대는 매복한 지점 한가운데까지 이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궤멸, 퇴각시켰다. 1920년 6월 7일의 봉오동 회전은 그 직전에 있은 화룡현 월신강(月新江) 삼둔자 전투에서 비롯되었다. 삼둔자 전투는 독립군이 그동안 통상적으로 수행하던 소규모의 국내 진입작전이 도화선이 됐다.윤병석, 《간도역사의 연구》(국학자료원, 2006) 75페이지 동시에 일본군 육군이 최초로 중국 대륙을 침공한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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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군정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는 서간도 혹은 남만주에 있던 한국의 독립혁명단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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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

안무(按舞)는 일련의 움직임을 디자인하는 예술로, 이 움직임 안에서 운동이나 형태가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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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홍범도(洪範圖,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 ~ 1943년 10월 25일)는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며,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 군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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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919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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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920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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