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5 처지: 도라노몬 사건, 도쿄 대학, 간토 대지진, 고토 신페이, 남작, 요나이 미쓰마사, 이치키 기토쿠로, 이케가미 시로, 일본, 일본 궁내청, 일본 내무성, 일본 회계검사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오카야마현, 혼조 시게루, 사이온지 긴모치, 사이토 마코토, 쇼와 천황, 쇼와 유신,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시, 시즈오카현, 1923년, 1925년, 2·26 사건.
도라노몬 사건
몬 사건()은 1923년 12월 27일 일본 고쿄 도라노문 밖에서 황태자 겸 천황 섭정궁 히로히토 친왕이 난바 다이스케의 저격을 받은 사건이.
도쿄 대학
학 발상지 비(도쿄도 지요다 구) 도쿄 대학()은 일본에 있는 국립 대학 법인이.
간토 대지진
화재가 일어난 마루노우치. 요코하마에서 본 간토 대지진의 피해 간토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32초(일본 표준시)에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 만을 진앙지로 발생했던 큰 지진이.
고토 신페이
신페이(1857년 7월 24일(안세이 4년 6월 4일) ~ 1929년(쇼와 4년) 4월 13일)는 이와테현 출신의 일본 제국의 의사자 관료, 정치가며 정2위 훈1등 백작이.
남작
작(男爵, Baron, 여성형: 남작 부인(男爵 夫人, Baroness), 여남작(女男爵))은 자작의 하위로, 오등작 귀족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작위이.
보다 유아사 구라헤이와 남작
요나이 미쓰마사
요나이 미쓰마사(1880년 3월 2일 ~ 1948년 4월 20일)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이.
이치키 기토쿠로
이치키 기토쿠로 이치키 기토쿠로 (1867년 5월 7일 ~ 1944년 12월 17일) 는 일본의 다이쇼, 쇼와 시대의 내무 관료, 법학자, 정치인이.
이케가미 시로
이케가미 시로 이케가미 시로(1857년 5월 11일 ~ 1929년 4월 4일)는 일본 제국의 경찰관, 정치인이.
일본
일본국(닛폰코쿠), 약칭 일본(日本,, 닛폰)은 동아시아에 있는 국. 국토는 태평양에 있는 일본 열도의 네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를 중심으로 주변에 산재한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 총 면적은 37만 7835 km2인데 이는 노르웨이(스발바르 제도와 얀마옌을 포함한 경우)보다 작으며 독일보.
보다 유아사 구라헤이와 일본
일본 궁내청
궁내청 청사 궁내청(宮內廳,, Imperial Household Agency)은 일본 황실에 관계된 사무나 천황의 국사 행위 중 외국 특명전권대사의 접수나 의례에 관한 사무 및 옥새와 국새의 보관을 관장하는 일본 내각부에 소속된 일본의 행정기관이.
일본 내무성
무성()은 1873년부터 1947년 12월 31일까지 존재한 일본의 중앙행정기관으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지령으로 해체되었.
일본 회계검사원
회계검사원(Board of Audit of Japan)은 일본의 행정기관이.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朝鮮總督府政務總監)은 조선총독부의 직위로 조선 총독의 아래에서 군사통수권을 제외한 행정, 사법을 통괄하던 직책이.
오카야마현
오카야마 현()은 일본 주고쿠 지방의 세토 내해 연안에 있는 현이.
혼조 시게루
혼조 시게루 (1876년 5월 10일 ~ 1945년 11월 30일)는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이.
사이온지 긴모치
사이온지 긴모치(1849년 12월 7일 ~ 1940년 11월 24일)는 일본 제국의 정치인, 교육자이.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마코토(1858년 12월 2일 ~ 1936년 2월 26일)는 일본의 해군 군인이자 관료, 정치가이.
쇼와 천황
쇼와 천황(1901년 4월 29일 ~ 1989년 1월 7일)은 일본의 제124대 천황이.
쇼와 유신
쇼와 유신()은 1930년대 쇼와 전기 일본에서 일어난 혁명 사상을 가리키는 정치용어이.
야마구치현
야마구치 현()은 일본 혼슈의 서쪽 끝에 있는 현이.
시모노세키 시
시모노세키 시()는 일본의 야마구치현에 있는 항구도시이.
시즈오카현
시즈오카 현()은 일본 혼슈 중앙부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현이.
1923년
1923년은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1925년
1925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2·26 사건
정 일대를 점령한 장교들 2·26 사건(二・二六事件)은 1936년 2월 26일 일본 육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1483명의 병력을 이끌고 일으킨 반란사건이.
또한 탕천 창평, 탕천창평로 알려져 있다.